조창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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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8-05 15:28:13, 조회 : 2,076, 추천 : 81 |

'살림지식총서' 시리즈 중 하나인 '베이징'( http://www.yes24.com/Goods/FTGoodsView.aspx?goodsNo=3024893&CategoryNumber=001001010006003)을 출간했습니다. 책을 쓰면서는 임어당의 '베이징 이야기'보다 좋은 책을 쓰고 싶다 였는데, 사실 제가 지식이 짧아서.. 이 시리즈가 좀 학문적인 반면에 제 책은 상당히 당대의 문화 읽기에 비중을 많이 두었습니다. 베이징을 느낄 수 있는 곳(난루오꾸샹, 따산즈, 따자란)은 물론이고 베이징 속 한국인, 한국기업, 베이징 여행 등도 소프트하게 다루었습니다. 이 책의 장점은 3000원 정도로 저렴한 핸드북이라는 것입니다. 한나절이면 읽을 작은 책이지만 당대 베이징을 읽는 좋은 정보서로 남았으면 합니다. 하단은 예스24의 책 정보를 옮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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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의 두뇌, 베이징 베이징이라는 공간 정치의 도시 베이징의 역사 베이징의 당대 문화 - 치엔먼, 스차하이, 따산즈 베이징 여행하기 베이징과 한국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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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이징이 두뇌라고 불리는 것은 우선 정치의 중심도시이기 때문이다. 양회(전국인민대표대회, 중국인민정치협상회의) 등 주요 정치 활동 기간인 3월이나 10월이 되면 정치 도시 베이징은 이전과는 완전히 다른 도시로 변모한다. 그 많던 호텔은 자리 구하기가 힘들고 이 기간에 열리는 회의에서 중국의 과거, 현재, 미래가 결정된다. 과거 역시 이 회의에서 자유롭지 못한 것은 이 기간에 진행되는 다양한 포럼을 통해 역사적 가치를 재평가받기 때문이다. --- p.4
역사소설 애호가들에게 북경이 첫 번째로 등장하는 것은 『삼국지연의』(이후 『삼국지』)에서이다. 『삼국지』에 보면 기주冀州라는 지명이 심심치 않게 등장한다. 지금도 허베이성의 단칭(單稱 : 각 성을 한자로 표시한 한자)으로 쓰이는 기冀는 원래 산시성 남부 하진현河津縣의 옛 지명이지만 삼국시대에도 지금 화북 지방 전반을 가리키는 지명이었다. 삼국지를 보면 유비의 고향이 탁현琢縣인데 이곳도 베이징 인근이다. 『삼국지』에서 기주를 첫 영역으로 한 인물은 공손찬(公孫瓚, ?~199)이다. 하지만 공손찬 당시의 지명은 유주幽州였다. 공손찬은 원씨袁氏 집안과 맞서 싸우다가 자살한다. 이후 이곳은 원소의 구역에 속해진다. 『삼국지』에서 볼 수 있듯 원씨 집안은 지나치게 거만했다. 이 거만 때문에 원소는 관도官渡에서 10분의 1밖에 되지 않는 조조군에 대패한다. 조조와의 전쟁 후 기주는 쑥대밭이 되는 장면이 ?삼국지? 중반에 나온다. --- pp.19~20
‘새들의 문답’이 발표되고 일주일 후인 1월 8일, 당시 중국에서 가장 사랑받던 정치가 저우언라이(周恩來, 1898~1976)가 영면했다. 저우언라이의 죽음 이후 3월 만주에는 많은 별똥별이 떨어졌고 민심은 뒤숭숭해졌다. 그리고 중국은 잠시 마오쩌둥 중심의 극좌적 조류에 휘말렸다. 3월 25일 문화대혁명을 촉발했던 상하이의 ‘원후이바오(文匯報)’는 저우언라이에 대한 비판 기사를 쏟아냈다. 이 신문은 저우가 주자파(走資派)라며, 공격의 포문을 열었다. 마오보다 더 사랑받았던 저우에 대한 이 공격에 시민들은 분노했다. 시민들은 항의의 의미로 30일부터 톈안먼 광장에 그를 추모하는 화환을 바치기 시작했고, 분위기가 심상치 않음을 감지한 중국 정부는 청명절이던 4월 5일 무자비한 체포로 시위를 잠재웠다. 이것이 바로 ‘베이징의 봄’으로 불리는 1차 톈안먼 사태, 4?5운동이었다. --- p.29
2007년 11월 프랑스 대통령 사르코지가 중국을 방문했다. 사르코지가 중국에 오면서 방문을 희망한 장소에 ‘따산즈(大山子) 798’이 들어 있었다. 자금성이나 창청, 시안들이야 충분히 알고 있었지만 따산즈라는 생소한 단어에 놀랐다. 문화 관련 부서에도 따산즈를 아는 이는 없었다. 이곳이 위치한 차오양취(朝陽區)의 관리들도 따산즈를 알고 있는 이가 없었다, 부랴부랴 따산즈에 대한 연구에 들어갔다. 폐공장이었던 이곳은 문화예술인들이 모이기 시작한 지 불과 5년 만에 땅의 임대료가 열 배 이상 폭등한 뭔가 문제가 있는 지역이었다. 베이징 정부의 도시계획에서, 이곳은 곧 정비해 섬유패션 단지를 만들 예정이었지만 지금 있는 문화예술이 섬유 산업보다 훨씬 더 강한 힘을 가진 것으로 인식했고, 도시 계획은 바뀌었다. 철거 대신에 따산즈는 자금성, 창청과 더불어 베이징의 3대 여행 특구로 지정됐다. 철거 예정지에서 가장 주목받는 곳으로 변모한 이곳은 곧바로 길을 뜯어서 고치기 시작했고, 올림픽을 앞둔 2008년 봄은 흙먼지가 그칠 날이 없었다. 따산즈는 중국 문화예술의 바로미터가 됐다. --- pp.60-61 |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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